관람후기

충주 가금면 한국한글박물관을 찾아서(3)

3,651 2012.01.21 2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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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놀러 오시게. <삼국지연의도> 8첩 병풍도 있으니---” 

한국한글박물관 김상석 관장의 전화 목소리가 정겹다. 

천안에 들러 홍윤표 교수님을 모시고 가기로 하였다. 홍윤표 교수님은 내 대학 은사님이요, 사모님 또한 내가 졸업한 대학의 교수님이시다. 손꼽아 보니 어언 30여년의 사제간이다. 

  

천안에 계신 홍윤표 선생님 댁은 까치밥 너 댓 개 달린 감나무가 지키는 2층 구옥(舊屋)이다. 물론 위아래 온통 책이다. 홍윤표 교수님은 우리나라 어학계의 거목이시기도하지만, 학문하는 이라면 사표로 삼을 만한 분이다. 학자로서 한결같은 학문자세도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언행일치를 보이는 정갈한 삶 때문이다. 제자에게도 절대 ‘-하게’하는 법이 없으시며, 공부하는 이들의 병폐인 소장 자료 또한 누구에게나 흔쾌히 제공해 주신다. 

선생님께서 타 주신 커피 한 잔을 들고, 안방에 놓인 옛 장이야기를 들었다. 장에 붙인 박쥐문양은 서랍을 의미함이요, 장인이 고심하여 짠 산과 바다 무늬의 나뭇결하며…. 우리의 반다지 장 하나에도 장인의 이야기가 저렇게 숨어 있다. 안타까운 것은 저러한 것을 공부하는 이가 없다는 현실이다. 

  

갈 길이 멀기에 서둘러 천안을 출발했다. 선생님께서 준비해 오신 내비게이션의 도움을 받는다. 초행길도 쉽게 찾아가니 문명의 이기가 새삼스럽다. 점심때에 맞추어 저만큼 충주 가금면 소재 한국한글박물관((http://www.hgnara.net/)이 보인다. 작년 이월에 찾았으니 근 일 년 만이다. 

  

김상석 관장 부처가 우리를 맞는다. 마음씨가 고와 그런지 아니면, 내외간에 정이 깊어 그런지 작년 이맘때와 다를 바 없다. 한국한글박물관 김상석 관장은 한글에 대한 사랑이 남다른 이로 자수성가형이다. 자수성가라 함은 한국한글박물관이 여느 박물관과는 다른 한글관련 유물을 소장했고 김상석 관장의 한글 사랑이 외곬이라는 뜻이다.

  

김 관장은 선생님과 나를 읍내 염소탕집으로 안내했다. 집은 허름하지만 고장을 대표하는 음식으로 손색이 없다는 김 관장의 설명이다. 은근 까다로운 내 입맛에도 부족함이 없다. 넉넉한 인심이 놓인 방 바람벽엔 ‘천객만래(千客萬來)’와 함께 ‘무심정견(無心正見)’이란 묘한 액자가 걸려있다. 식사를 하며 무심과 바른 견해라? ‘무심’은 물욕에 팔리는 마음이 없고, 또 옳고 그른 것이나, 좋고 나쁜 것에 간섭이 떨어진 경계요, ‘정견’은 사물의 이치를 알고 제법(諸法)의 참모습을 바르게 판단하는 지혜인 듯싶다. 

  
김 관장이 운영하는 한국한글박물관은 정방형으로 한글에 대한 자료로 빼곡하다. 한쪽에는 내가 보고자하는 삼국지연의도 8첩 병풍도가 있다. 올 해는 이 고소설도로 논문을 써보려 한다. 

김 관장의 배려로 홍윤표 선생님도 여러 자료를 보신다. 한글에 관한 김 관장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자료를 입력하는 카메라의 셔터 소리도 벌써 겨울의 어둠에 묻혔다. 

  

저녁은 선생님께서 내셨다. 

“안녕히 가세요. 또 오세요.” 

“예, 잘 먹고 잘 보고 갑니다.” 

“다음에 또 보세.” 

충주의 밤공기는 차지만 보내는 이와 떠나는 이의 수인사는 정겹다. 

  

한국한글박물관 김상석 관장 부처의 배웅을 받으며 나와 선생님은 천안을 향해 출발했다. 겨울밤은 이미 9시를 넘어섰다. 선생님이 사주신 오리백숙으로 배는 든든하고 가방엔 논문거리가 그득하다. 밤길이지만 선생님 무릎에 놓인 문명의 이기에서 들리는 아리따운 여인의 음성만 믿으면 된다. 

그래, 공부하는 맛이 이만하면 된다싶다. 

2012년 1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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